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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9일 === 1983년 5월 19일 오전 10시 45분경, 루이나 해군은 해상봉쇄작전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부 해역을 항해 중이던 정체불명의 대형 수송선 1척에 대해 최초의 전함 포격을 감행하였다. 사격을 수행한 함선은 루이나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중 현대화 개조를 마친 제3번함 미주리(RNS Missouri)로, 당시 해역에서 봉쇄선을 이탈하려 시도하는 선박을 중거리 레이더로 탐지한 뒤 수차례의 정지명령을 발신했으나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주리는 이에 따라 사거리 35km급의 5인치 부포를 이용해 경고포 2발을 발사했으며, 해당 선박이 여전히 항해를 멈추지 않자 주포 사격 3발을 추가 실시했다. 포격은 선박의 선미 부분에 명중했고, 화재와 연료 유출을 유발하며 선체를 심각하게 대파시켰다[* 함체가 찢겼다는 표현아 적합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의 구축함이 근접 접근해 승선 검문을 시도했으나, 선박은 부분 침몰 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선원 전원은 구조되었으나 사상자 57명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선박은 등록국가가 명확하지 않았으며, AIS(자동식별장치) 또한 꺼진 상태로 운항 중이었다. 루이나 해군은 사후 검문에서 일반 상선으로 위장된 불법 군수 운반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선내 일부 방사선 차폐 장비와 군용 포장 상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편 웨스타시아 정부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공해상에서 벌어진 명백한 민간선박에 대한 불법적 선제공격”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루이나가 고의적으로 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나, 루이나 국방부는 “국제 봉쇄선(EWS)을 통과한 정체불명 선박은 모두 적성행위로 간주한다는 기존 방침에 따른 조치”라고 대응했다. 같은 날 오후 1시경, 루이나 해군 전함 미주리(RNS Missouri)가 불명의 수송선을 포격하여 대파시킨 사건 이후, 웨스타시아 해군은 즉각적인 보복 조치에 나섰다. 웨스타시아 측은 근처 해역에 은밀히 배치된 수상함 전력으로부터 총 7발의 대함미사일을 동시 발사하여 미주리를 정조준했다. 이들 미사일은 대부분 RBS-15 계열의 중거리 대함 미사일로 추정되며, 속도와 회피 기동 성능을 갖춘 위협적인 전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은 이를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으며, 함대 방공망의 경계태세 또한 최고조에 도달한 상태였다. 특히 미주리호는 개량된 CIWS(근접방어화기체계)인 팰렁스 블록1B와 SPY-2 계열 다기능 레이더, 해상도발 레이더망과 연동된 교차요격체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중 일부는 인근 구축함 및 순양함과 통합된 함대 공중방어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격 개시 후 약 18초 이내에 전 함대가 발사된 미사일을 탐지하였고, 미주리를 중심으로 한 방공망은 즉시 요격 절차에 돌입했다. 함대 소속의 구축함 1척이 SM-2 함대공 미사일 3발을 발사해 고고도 유도탄 2기를 격추했고, 나머지 5발은 팰렁스 CIWS 및 근접방어탄에 의해 미주리 상공 2.5km 이내에서 모두 격추되었다. 마지막으로 접근하던 미사일 한 기는 명중 0.8초 전까지 접근하였으나, 미주리의 좌현 CIWS에 의해 격추되었으며, 이때 발생한 파편에 의해 갑판 근무 중이던 수병 1명이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쳐 실명하는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루이나 해군은 이후 해당 수병을 긴급 이송하였으며, "그의 희생은 전함과 수백 명의 장병을 지켜낸 용기의 상징"이라고 발표했다. 이 일련의 대응은 루이나 해군이 전면전 상황에서도 냉정한 방공 통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한편, 루이나 정부는 웨스타시아의 이번 공격에 대해 “해상 봉쇄에 대한 무력 도전이며, 루이나는 결코 퇴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1983년 5월 19일 밤, 루이나 해군 전함 미주리가 불명의 수송선을 포격하고, 이에 대한 웨스타시아의 보복 공격까지 완전히 차단당한 시점에서,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Alvin Carpentry York)의 정신적 상태는 극단적으로 몰려 있었다. 핵무기 운송 작전은 이미 4차례나 지연되었고, 봉쇄선 돌파 시도는 연이은 실패로 끝났으며, 전략자산인 잠수함 1척이 침몰당하고, 공군기지 활주로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초토화되었다. 여기에 해군의 수송전단 일부가 격침당하고, 22대의 토네이도 전투기 중 9대가 격추되는 치욕적인 손실까지 겹치면서, 작전 전체가 붕괴 직전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었다. 상황 보고를 들은 요크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책상을 내리치고 유리병을 던지는 등, 고함을 질렀고, 참모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비서진에게 “우리는 지금 루이나라는 철의 벽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다들 미쳤다, 아니면 나만 미친 건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은 떨렸으며, 이전까지 보여주던 침착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웨스타시아 내각은 이러한 요크의 상태를 우려하며 비공개로 권한대행 체제 검토까지 논의했으나, 요크는 “끝장을 보겠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점에서 웨스타시아는 사실상 로벤자운 작전 실패의 길목에 서 있었고, 대통령 자신조차 상황 통제력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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